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멜 표류기 (문단 편집) == 기타사항 == * 이들이 처음 상륙한 곳이 [[제주도]]라서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의 [[용머리해안]] 인근에 하멜을 기리기 위해 커다란 범선 형태의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다만 조선의 기록은 그들이 표류한 위치가 '大靜縣地方 遮歸鎭下 大也水沿邊'(대정현지방 차귀진하 대야수연변)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조성된 위치가 잘못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 강진군에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하멜 일행이 거주했다는 증언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여기 살았다더라"는 식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 특이하게도 1670년에 출판된 [[하멜 표류기]] 프랑스 번역판인 "Relation du Naufrage d'un Vaisseau Holandois, Sur la Coste de l'Isle de Quelpaerts: Avec la Description du Royaume de Corée: Traduit du Flamand; Par Monsieur Minutoli"라는 [[https://www.foldvaribooks.com/pages/books/1443/john-locke-hendrick-hamel/relation-du-naufrage-dun-vaisseau-holandois-sur-la-coste-de-lisle-de-quelpaerts-avec-la|책에 존 로크가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존 로크의 서명을 해당 책의 앞부분에 확인 할 수 있다. 1670년대에 출판된 [[하멜 표류기]] 프랑스 번역판을 [[존 로크]]가 읽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 하멜과 같이 조선으로 갔던 사람 중에는 하급선의(승선 의료진) 마테우스 에보켄(Mattheus Eibokken)이 있다. 에보켄은 표류자 일행 중에 조선말을 가장 유창하게 구사했는데, 그래서 귀국 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임원 니콜라스 빗선(Nicolaes Witsen)에게 증언하는 형식으로 간단한 네덜란드-조선어 사전을 출판했다. [[https://www.vos.henny-savenije.pe.kr|링크]] 이 사전은 사실 하멜 표류기에 직접 포함되지는 않지만 일부 출판본에서 부록 형식으로 끼워주기도 한다. 이 사전의 내용은 중세국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떡]]은 Stock, [[뺨]]은 Spaem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17세기에 'ᄯᅥᆨ', 'ᄲᅡᆷ > ᄲᅣᆷ'의 초성자에 쓰인 [[ㅅ계 합용병서]](ㅼ, ㅽ)의 앞 ㅅ 발음을 그대로 했다는 증거가 된다. 또 [[닭]]은 Tiarck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해당 단어를 단독으로 발음할 때도 자음군 단순화를 적용한 [닥]이라 읽지 않고 겹받침의 [ㄺ]을 전부 발음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 하멜 일행의 최연소자는 탈주 당시 25세의 데니스 호버첸으로, 조선에 도래했을 당시에는 12살의 어린아이였다. 그는 당시 배에서 이런저런 잡일을 하는 급사로 채용되었는데, 조선에서 보낸 세월이 네덜란드에서 보낸 세월보다 더 길었기 때문에 네덜란드어로 읽고 쓰는 방법들을 다 까먹어 버렸고 귀국후 급여를 정산하는 명세서에 동그라미나 X를 그려 동의 여부를 표시했다. 그다음 연소자들은 탈주 당시 27세의 베네딕투스 클레르크, 클라스 아렌센이다. 마찬가지로 급사 출신인 이들 역시 조선 도래 당시 14세로 데니스 호버첸과 처지가 다르지 않았다. * 하멜 일행의 최고령자는 조선에 남았다고 전해지는 요리사 얀 클라에천[* 49세로 하멜 일행의 탈주 당시 남원 거주.]을 제외할 경우 탈주 당시 47세의 조타수 호버트 데니슨으로, 바로 데니스 호버첸의 아버지이다.[* 호버첸은 호버트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영어에서 아들의 이름에 -son을 붙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바꿔 말하면, 호버첸은 아버지가 일하는 배에서 일머리 배우려고 따라갔다가 변을 당한 셈이다(...) * 대다수의 네덜란드 에덜란드 동인도 회사 선원들은 하멜과 같은 엘리트 서기를 제외할 경우, 게르만 족 특유의 장자상속제로 인해 10대 초반의 어린나이에 고향을 떠나 동인도 회사에 급사로 채용되어 수십여 년 간 내부승진으로 간부급 직위에 올라 상관 임원으로 퇴직 하는 것이 관례였다. 자식을 데리고 배에 오른 호버트 데니슨이 특이한 경우. * [[이말년씨리즈]]에서 맛깔나게 패러디를 했다.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103759&no=49&weekday=wed|보러가기]] 당연히 재미를 위한 왜곡이 많으므로 비현실적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본래 하멜이 저런 인물이었다고 믿으면 곤란하다. 고증오류인지 각색인지 알 수 없으나 기록과 달리 하멜이 혼자 표류된 포수로 등장한다. * [[조선왕조실톡]]에서도 패러디되었다. 독자의 재미를 위해 하멜 일행이 네덜란드어 대신 영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https://comic.naver.com/webtoon/detail?titleId=642598&no=151&weekday=sun|보러가기]] * 드라마 [[탐나는 도다]]의 원작 만화의 모티브가 바로 이 하멜 표류기라 한다. * [[네덜란드]]어 [[위키피디아]]의 [[https://nl.wikipedia.org/wiki/Hendrik_Hamel|헨드릭 하멜 항목]]에서는 어째서인지 한국인들 사이에서 하멜이 [[거스 히딩크]]급으로 매우 유명하다는 약간 과장된 듯한 서술을 담고 있다. 사실 본토 네덜란드에서는 좀 별난 난파 경험을 겪은 대항해시대의 흔하디 흔한 선원 1에 지나지 않아 그렇게까지 유명한 인물도 아닌 반면, 한국에서는 거의 최초로 한국에 대한 기록을 문서로 남긴 서양인이라는 사실이 굉장한 상징성을 지녔으며, 대대수의 한국인들도 교양 프로그램이나 일부 열의있는 국사 교사들에게 여담으로 이름이나마 접해 보았고, 그가 한때 마무른 [[강진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강진군이라는 동네가 마땅히 관광거리라곤 없는 깡촌인지라 하멜을 일종의 관광자원 삼아 하멜 기념관과 동상까지 세우고 [* 심지어 하멜 [[맥주]]도 있어서 맥주 축제도한다.[[https://www.news1.kr/articles/?5144100|#]]] 하멜의 고향이 호린험이라는 인연에서 강진군이 호린험과 자매결연을 맺는 등 충분히 유명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니 그렇게 여길 만도 하다. 그리고 사실 한국에서 [[빈센트 반 고흐]]나 [[렘브란트]], 히딩크 감독, 그 외에 [[아르연 로번]]이나 [[뤼트 판니스텔로이]] 같이 대개는 한국 축구선수와 한 팀에서 뛴 덕에 유명한 스포츠 스타 정도를 제외하면 하멜의 인지도를 따라올 네덜란드 사람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과장은 약간 있되 그리 심한 과장까지는 아니고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생각해도 이해할만한 정도. [[분류:여행기]][[분류:1668년 작품]][[분류:한국-네덜란드 관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